DCW 2025 퍼블릭: 하루(들)
2026.3.19.—4.4.
두산갤러리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공동 기획: 박수정, 전지희, 한문희(아모)
더없이 개인화된 사회에서, 여전히 우리를 묶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일상을 영위하는 데만도 벅차 주위를 둘러볼 수 없는 와중에 책무나 의리와 같은 일종의 도리를 언급하는 것은 낡고 고리타분한 일일까. 꺼져가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애타게 보듬어 다음 사람에게 온기와 빛을 선물하고, 동시에 그것을 지켜낼 의무를 부과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우리의 관계는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끈적하고, 불편하고, 지난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사랑이, 돌봄이, 저항이 자리하며, 우리의 하루하루를 지속하게끔 한다. 서로에게 몸을 맡기고 서로에게 휘말리는 우리. 그렇게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구태여 시간을 내고, 기어코 손을 마주 잡는 일은 ‘예술’과 어떻게 닮아 있을까. 《하루(들)》은 서로의 여분을 내어놓고, 각자의 마음과 힘을 보태가며 만들어가는 삶에 맞붙은 예술을 실험해 본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실패를 예보하고 있다. 효율은 애매하거니와, 때로는 그 필요조차 쉬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술의 모양새는 때때로 영 불안정하다. 하지만 시스템에 맞춰진 내 삶의 속도와 작동 방식에 잠시 제동을 걸고, 예술의 리듬이 스미고 작동할 수 있는 틈을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것은 실패에 응하며 할 수 있는 가장 자그마한 저항이지 않을까. 그로부터 예술은 비로소 내게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일상과 함께할 수 있음을, 함께 가야만 함을 깨닫게 한다. 각자의 삶이 지속되는 하루하루에, 여분의 마음(들)과 시간(들)이 모여 개입하는 ‘하루(들)’.
삶과 예술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는 안담의 ⟨술래잡기: 이어 쓰는 워크숍⟩에서 참여자 개개인의 미시적인 질문을 거치며 점차 구체적인 모습을 찾아간다. 친절한 답장보다는 정직한 답장을 요하는 이 글방의 약속에 따라, 참여자는 4주간 이어지는 ‘술래잡기’에서 한 번은 반드시 술래가 되어 앞선 질문에 답을 하고, 다시 질문을 남겨야 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과 답은 정해진 방향키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혼자였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곳으로 참여자 각각을 인도하게 된다. 설사 서로가 완전히 다른 도착지에 도달하게 되어도, 그 행로를 공유한 이들의 연대는 임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은 그에 응답하고 싶게하는 모종의 힘이 있다. 이는 타인을 내 문장으로, 내 삶으로 초대하는 일이자, 상호 간의 의존에 기대어 서로의 필요와 존중을 체득게 하는 일이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응답의 구조는 윤마리의 ⟨우리두사람이우주를구성한다⟩와 닮아 있다. 작가 윤마리와 퍼포머 서소행, 송윤아는 손발톱을 깎거나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는 행위를 순환하듯 반복한다. 이러한 퍼포먼스의 짜임과 일상적인 돌봄의 몸짓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하루(들)에서 비롯한다. 행위를 제공하는 이와 행위를 받는 이는 주로 사적인 공간에 머무르게 되는데, 이처럼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행위를 퍼포먼스의 층위로 재위치시키는 기제는 '목격자'이다. 세 퍼포머는 본 작업의 리서치에서 행위가 일어나는 관계 안에 자리하는 동시에 그에 참여하지 않는 목격자를 번갈아 수행했고, 퍼포먼스에서는 목격하는 관객이 이 역할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바깥의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돌봄 행위는 공적 발화의 가능성을 담지하게 되고, 관계 안에서만 일어났던 행위들은 관객들에게 기대어진다. 더불어 퍼포먼스의 연계 워크숍에서는 참여자가 직접 세 가지 행위 중 한 가지를 같이 수행해 보며, 행위를 제공하는 몸과 받는 몸이 잠정적으로 하나의 겹쳐진 몸이 됨을 감각해보게 된다.
개인의 상황을 공적 공간에 내놓는 것은 그만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자, 그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선언하는 일이다. 조율의 ⟨이사 가는 날⟩은 거주자를 이사 ‘시키는’ 도시와 그것의 작동 방식을 소환한다. 어디 하나 고정된 거취를 마련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묵은 짐을 버리고, 필요한 짐은 포장하며 이사를 한다. 이 정도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드는 품이 자명하게 드러나는 날. 예술은 엉뚱하게도 그 빠듯한 삶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다. 간신히 감당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버리지 못하는 그것, 이삿짐 한켠에 꼭 매달아 두는 그것. 작가에게 그것은 창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애착 인형일 것이며 또 누군가에는 접어둔 오래된 마음일 것이다. 조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고 가는 각자의 짐을 사진과 영상의 형태로 모집 받아 거리에 스크리닝한다. 서로의 짐은 하나의 집합체가 되어 밤의 거리에 얹어진다. 재개발 현장의 공사 가림막, 가게의 셔터, 다리 밑 공터, 돌덩이에 이르기까지 낮과 달리 느슨해진 밤은 프로젝션의 일시적인 점거를 허용한다. 그것은 체계 외부의 것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투사됨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지지하고 있다는 행진이자 구호가 된다.
한편, 유은의 ⟨밤 짓기⟩는 밤을 함께 통과해 보는 경험에 주목한다. 어둠이 내린 도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워크숍의 참여자들은 익숙한 서울을 새로운 풍경 조각으로 연결하는 경로를 따라 도시를 걷는다. 세종호텔, 기억의 터, 세운4구역 등을 지나며 이 도시에 얽힌 두터운 과거와 그에 연루된 현재를, 저 발치의 미래를 나의 몸으로 감각해 본다. 은연중 서로를 챙기는 눈짓과 서로의 등을 의지하다 보면, 어둠이 자아내는 불안을 잠재우고 밤이 불러오는 생경한 감각과 낯선 풍경과 소리에 감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럿의 속도가 교차하고 앞뒤로 함께하는 이가 바뀌며 한마디 말없이도 유대감이 순간을 묶어내는 경험을 하고 나면 우리는 솔직해진다. 각 공간에서 느낀 형언할 수 없는 울렁임을 더듬다가, ‘이야기돌’에서 들려오는 밤의 소리를 떠올리다가, 동행한 이들의 말에 공감하다가, 그렇게 함께 밤을 짓는다. 밤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취약한 서로를 조용히 어루만지다 보면 다시금 아침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들)이 연속되는 도시의 어둠을 따라 걸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분을 열어 놓게 될 것이다.
느슨하게 열린 서로의 틈으로 매듭이 지어진다. 매 순간 횡단하는 상태 속에서 이솔라 통은 ‘매듭 땋기’를 거듭하며 공동체와 함께 지속해 나가는 예술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매듭 땋기는 촉각적 접촉의 행위로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기억하고 연결하기 위한 매개적 실천이다. 지역사회, 퀴어–트랜스 커뮤니티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녀의 바구니와 그물 형태의 설치 작업들은 돌봄과 생태정의, 친밀감과 같은 의미를 엮어 낸다. 이러한 형태는 여러 갈래의 직물을 땋아 매듭을 짓는 방식을 취하는데, 연약한 낱낱의 재료를 엮어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매듭은 공동체의 상호의존성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관객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참여형 작품인 ⟨매듭(들) 땋기⟩로—나선형의 근육이 서로를 감싸며 혈액을 펌프질하는 심장처럼—모이고, 연결되고, 엮이는 마음의 힘을 실험해 본다. 참여자들은 지시문에 따라 작가의 친구들이 입었던 옷이나 자투리 천을 얇고 긴 조각으로 잘라 그 위에 각자의 바람이나 생각을 적고, 앞서 매듭 지어진 천의 느슨한 끝을 이어 묶으며 점들을 선으로, 연결된 망으로 연결해 나간다. 공간의 조건과 한계에 반응하며, 마치 생명체처럼 마음으로부터 양분을 받아 자라나고 변형되는 구조물은 예술을 빌어 잠정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함께 짓는 건축물이 된다.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작품이 내포하게 될 결코 매끄럽지 않은 만남들, 즉 각기 다른 욕망과 어긋남이 공존하는 우리의 관계와 불안정하고 모순된 세계 속에서도, 일종의 쉘터가, 매듭 지어진 힘들이 나타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매일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은 미완결의 기획과 우연한 만남으로, 각자의 여분으로 만들어진 호의와 참여와 호기심으로 향한다. 그리고 동시에, 또 매일 ‘사건이 일어난다’.* 이 하루(들)은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라 소중한 것만은 아닐 테다. 그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로부터 삶과 예술이 맞붙어 있음을 깨닫게 해주어서 소중하다. 4월 4일, 퍼블릭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게더링’에서는 성긴 우리 사이의 잠재된 연대를 띄워 올려본다.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는 매듭처럼 연대가 계속될 수 있기를(이솔라 통), 술래잡기로 이어지는 질문과 답장이 계속될 수 있기를(안담), 두려움이 깔린 밤 서로를 믿어 나갈 수 있기를(유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 있기를(윤마리(서소행, 송윤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고 가는 각자의 삶이 사소히 여겨지지 않기를(조율) 바란다.
그리고 그 경로에 당신이 당신의 예술로 함께하기를 초대한다.
*이 기획은 12・3 계엄과 이후 이어진 거리에서의 기억을 딛고, 2025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휴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학살을 목격하며 만들어졌으며, 이 글은 2026년 3월 이란에 떨어진 폭격 속에서의 되풀이되는 ‘사건(들)’과 함께 쓰여졌다. 동일한 단어 속에서 얼마나 많은 다른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각 프로그램은 모두 예약제로 운영되며,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❶ 안담 ⟨술래잡기: 이어 쓰는 워크숍⟩
❷ 유은 ⟨밤 짓기⟩
❸ 윤마리(서소행, 송윤아) ⟨우리두사람이우주를구성한다⟩
❹ 이솔라 통 ⟨매듭(들) 땋기⟩
❺ 조율 ⟨이사 가는 날⟩ - 상영작 참여 신청
조율 ⟨이사 가는 날⟩ - 스크리닝 참여 신청